2008년 5월 20일 화요일

영화 '버킷 리스트'를 보고

정말 오랫만에 남편도 딸도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일년에 한번 오는 10월의 마지막 밤도, 크리스마스 이브도, 한해의 마지막 날도 아닌데 들뜬 마음으로 퇴근후 친구들과의 약속을 바쁘게 잡았다. 평소 같으면 몸을 사리며 가능한 일찍 퇴근해 쉬려고 할 월요일. 나는 간만에 성미를 만나 잭키즈 키친에서 밀린 수다를 떨고 메가박스에서 버킷 리스트를 보았다.
처음엔 비스티 보이즈를 예매할까 하고 물었더니 너무나 쉽사리 좋다고 대답하는 전화너머 성미의 대답. 혹시 얘가 뭐든 상관없어서 대충 대답한게 아닌가 하고 오히려 영화선정에 신중해졌다. 인터넷으로 최근 영화들에 대한 평들 및 별점을 보니 비스티보이즈는 생각보다 네거티브한 반응이었다. 한편 아쉽기도 했지만 최근 아이언맨도 봤던지라 두 노인네들이 죽음을 맞기전 모험을 한다는 어찌보면 꿀꿀하고 칙칙한 플롯의 영화를 단지 별표가 다소 많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간만에 친구와 보는 영화인데 보고나서 극장에 돈버리고 온 기분일 수는 없지 않은가.
예상과 달리 비스티 보이즈를 예매 안했다고 하자 급실망하는 친구. 그 빠른 대답은 무성의한 대답이 아니라 간절히 바라던 것에 대한 급한 반가움의 표시였던 것이다. 나름의 신중한 선택배경이 있었음을 듣고 친구도 두 노인의 영화를 보는 것에 동의를 했다.

영화는 시종일관 쌈빡한 외모의 비중있는 여자 캐릭터라곤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두 원로한 배우, 잭니콜슨과 모건프리먼의 대화가 이어진다. 잭니콜슨의 깊은 주름은 더이상 귀엽지 않고, 모건프리먼의 짙은 주근깨를 계속 보는 것은 비호감을 넘어선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으나 사형선고를 받은 두 노인들의 결코 가볍지않은 상황에서의 너무나 유쾌, 통쾌하다 못해 발랄한 화법은 시종일관 보는 이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자아냈다. 어쩌면 배역 나이만큼의 세월을 살았고 그 나이만큼의 연기내공이 쌓인 헐리우드 최고의 두 원로 배우들이기에 이런 해학적인 웃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줄 수 있는것이 아닐까.
영화는 젊고 멋진 미남 미녀들을 보는 즐거움은 없으나 죽음을 앞두고 누구나 꿈꾸는 세계 각지의 명소를 돌아보는 간접경험의 즐거움을 충분히 제공해준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 피라미드, 인도 타지마할, 로마, 홍콩 등 그야말로 튼튼한 육체와 앞으로 살 날들이 많은 이들조차 쉽사리 엄두를 못 낼 장소들을 짧은 시간에 호화 제트기를 타고 누빈다. 가족보다는 돈과 일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잭 니콜슨도,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온 인생이 후회스러웠던 모건 프리먼도 결국엔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함께 만든 죽기전에 꼭 해보아야 할 것들인 버킷 리스트를 모두 실행하면서 영화를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버킷리스트 중 눈물이 날 때까지 크게 웃기라는 항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정말이지 나이가 들면서 형식적인 웃음, 감정을 덜 드러내는 웃음, 비웃음들만 늘어갈 뿐 진정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이 영화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두가지 화두를 던진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그래, 나도 항상 내 주변인들이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 것만 쉽사리 탓을 했지 내가 그들을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요즘 메마른 내가 항상 마음으로 새기는 말이 있다. '웃는 여자는 웃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들은 많이 웃는 사람들은 어딘가 바보스럽고 실없고 똑부러지지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진다. 그리고 너무 많이 보여주면 자기를 깎아 내리는 듯이 스스로를 감추고 포장하고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 나 역시 내가 먼저 웃음을 주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인 양 점차 사람들을 대할 때 웃음을 잃게 되고 무표정해진다.
먼저 웃음으로 다가가는 것이야 말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는 가까운 사람들부터 항상 웃는 마음으로 웃는 얼굴로 대해야겠다. 슬픈 사실은 무표정에 익숙해진 탓에 얼굴근육이 굳어 자연스러운 웃음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아름다운 주름살을 매일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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