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9일 화요일

PR를 받아쓰는 신문

[옴부즈맨 칼럼] PR를 받아쓰는 신문/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세계의 전쟁터를 취재하고 다니는 CNN의 베테랑 여기자 크리스토퍼 아만포어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쯤 되는 시점에서 한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발언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만포어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정부의 PR는 교묘할 정도로 발달했는데, 언론사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취재해야 하는지 배운 것이 별로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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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정부와 기업, 심지어 시민단체까지 PR기술은 날아갈 듯 발달하고 있는데, 신문 기사의 취재 보도 방식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베트남 전쟁 때 무방비 상태로 언론에 전장터를 공개하면서 반전 운동의 빌미를 줬지만,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엄격한 통제도 하고 또 9·11 이후 이라크전에서는 안내된 종군취재(embedded report) 방식도 고안해 내면서 사실상 언론보도를 주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PR를 받아쓰는 신세를 면키 어렵다. 나중에 국방부가 허위·과장 홍보를 했다는 비판 보도가 나오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
최근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비행 참가를 생중계한 방송사와 이를 받아쓰기한 신문사들이 작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제대로 된 우리 우주과학 기술도 아니고 제대로 된 우주인도 아닌, 우주비행 이벤트를 관계당국이 과대 홍보했고, 언론이 홍보 효과를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신문들은 다소 민망했던지 뒤늦게 비판기사를 게재하고 내실있는 우주개발을 촉구하는 사설을 쓰기도 했다.
서울신문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과 관련된 기사를 지난 1년간 약 90건을 게재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우주과학 개발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분석 기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주인 선정과정과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 기사가 많았다. 관련 기사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관련 정부 부처에서 제공한 정보들로 채워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주인 홍보문제를 지적하는 글은 사건의 후반부에 두 건 정도 발견된다. 함혜리 논설위원이 3월29일자 31면 서울광장 ‘과학은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총 260억원이 투입된 우주인 프로젝트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간단하다. 과학을 이벤트로 접근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4월21일자 ‘이소연씨 귀환, 우주 한국 도약 계기돼야’ 제목의 사설은 “우주인 교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와 우주 관광객 논란이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만큼 이번 우주인 탄생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우주개발 계획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1월1일 신년특집 ‘스페이스 코리아(SPACE KOREA) 원년이 밝았다’ 기사에서 나중에 교체된 고산씨는 “우주인 기사가 흥미위주로만 실리고 의미는 축소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홍보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언론이 좀 심하다 싶었나 보다.
대한민국의 우주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 부족은 여러 가지로 심각한 문제이다. 뭔가 국민적 관심과 공적 예산의 투입을 위해서는 일정부분 홍보가 필요했을 터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보다 많은 의회 예산 배정을 위해 유사한 홍보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허위나 과장 홍보를 시도할 때 그 역효과는 자명하다. 홍보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홍보전략까지도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언론들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우주개발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번 ‘우주인’ 사건은 우주개발에 대한 홍보나 언론보도 또한 아마추어 단계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과 진실에 충실하지 않으면 뭐든지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웹2.0 엑스포’가 주는 교훈


[ET단상]‘웹2.0 엑스포’가 주는 교훈

 표철민 위자드웍스 대표
pyo@wzd.com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웹2.0 엑스포’에 참석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작년과 너무나 달랐다. 그 활기차던 창업자들도, 열띤 토론의 장도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모인 인터넷 선구자들의 뜨거운 축제가 정말 차갑게 식었다. 처음 ‘웹2.0’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인물이자, 행사를 4년째 주최하고 있는 팀 오라일리는 기조연설에서 “여전히 웹2.0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이미 많은 참가자는 ‘웹2.0’이 이제는 거품만 잔뜩 낀 싸구려 마케팅 용어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2005년, 팀 오라일리가 과거 10년간 성공한 웹서비스를 분석해 공통적인 성공 분모를 제시하며 ‘이것이 웹2.0’이라 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열광했다.

닷컴 버블 이후 계속 침체됐던 웹서비스 창업은 제2의 구글, 제2의 아마존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돈만 쌓아두고 있던 투자자들도 엄청난 물량을 웹2.0 사업을 하겠다는 벤처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다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하루에도 십여 개씩 신생 웹사이트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실상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필적하는 대성공을 거둔 서비스는 결국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닷컴 버블을 통해 한번 크게 덴 경험이 있는 투자자와 언론들은 이 때문에 금방 ‘거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작년까지만 해도 북적이던 웹2.0 엑스포가 불과 1년 만에 ‘차갑게 식어버린’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성공 모델의 부재. 이 모든 것이 불과 최근 2∼3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는 단지 멋진 말 한마디로 그들을 현혹시킬 수 없다. 업계가 아주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우리는 웹3.0 기업’이라고 보도자료를 냈다가 블로거들의 냉소를 받은 회사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벌써부터 무언가 좀 더 새로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웹3.0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웹2.0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일컬어지는 참여·공유·개방·집단지성 등에다가 개인화와 인공지능(또는 시맨틱웹)을 추가하면 그것이 웹3.0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웹서비스 업계는 웹2.0 이라는 용어를 최근 2∼3년 새에 너무나 잘 이용해 왔다. 침체된 업계 전체를 활황으로 만들기에 ‘2.0’이라는 분절된 용어 마케팅은 아주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체가 없음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지금이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는 실은 우리도 몰랐던, 또는 애써 피하려 했던-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해 ‘웹2.0’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접하고는 서점에서 ‘웹2.0 개발론’ ‘웹2.0, 새로운 세상’ 따위의 보나마나한 책을 고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지면을 빌려 솔직히 반성하고 싶다. 이제 와서야 깨달았는데 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웹일 뿐이었다고. 웹2.0도 3.0도, 또 최근 이야기 나오는 ‘소셜 웹’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결국은 그저 웹이 발전하는 과정의 일환일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웹2.0이란 없다. 그럴싸한 이론으로 무장해 웹3.0이라 포장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필시 가짜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웹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또한 내일도 있을 연장선상의 웹일 뿐이다. 변화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코 분절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2.0’ 따위의 단어를 달고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싸늘해진 2008년 ‘웹2.0 엑스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한다.